MEMBER LOGIN

MEMBER LOGIN

오늘 방문자
175
어제 방문자
192
최대 방문자
565
전체 방문자
506,692
현재 접속자
10 (회원 1)
DVD 신청을 원하시는 분은 연락번호와 주소, 수량을  moonbm@hanmail.net 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1   13-02-06
양견   2,872
 

<위로부터 약도,  두란노서원이라 불리는 셀수스도서관,에베소가는 길, 창녀촌 가는 표시, 연극장>
▮ 에베소(Ephesus ‘인내’)
1. 개관
에베소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성읍이었다. 신약시대, 에베소에는 카이스터 강으로 통하는 항구가 있었으며, 이 강은 에게 해로 흐르고 있었다. 또한 에베소는 주요한 상업 도로들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상업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며  유프라테스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다.
(2)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Artemis) 여신상이  있어서 미신이 성행하였으며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3)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스트라테고이'(Strategoi)라는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불레'(Boule)라는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따라서 명목상 '버가모'가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에베소가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Mounce, Kraft, Kiddle). 이러한  에베소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또한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 2년 간 머무르며 목회하였고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행19장; 딤전1:3, Ironside).
에베소 사람들은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헬라어로는 아데미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이교도의 신전을 자랑하고 있었다(행 19:23-31 참조). 바울은 에베소를 3년 동안 복음전도의 중심지로 삼았는데(행 19:10 참조), 그곳 교회는 분명히 얼마 동안 번창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 교회는 계 2:1-7의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2. 지리적 배경
아나톨리아의 다른 헬라식민지처럼 에베소도 에게해 해안에 위치하고 카이스터(Cayster) 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초기 거주흔적은 주전 1400-1300년경의 미케네인들의 무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주거지의 역사와 발전은 2000년 동안 지속되었고 4개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4 시대는 3개의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뷸뷸다그 다그(B&uuml;l&uuml;l Dagh), 파나일 다그(Panayir Dagh), 아야솔룩(Ayasoluk)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들. 
첫 번째 거주지는 고대 이오니아 인들 흔적이다. 스트라보에 따르면 안드로클루스(Androclus)부터 크로에수스(Croesus) 지배시기까지 헬라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나일다그의 북쪽아래 정착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시기 헬라도시는 크로에수스부터 리시마쿠스(Lysimachus, 주전 550-300)까지 아야솔룩의 남서쪽 아데미신전 근처에 밀집하여 살았다. 
세 번째 시기에는 리시마쿠스의 노력으로 뷸뷸다그와 파나일다그사이 계곡에 육중한 성벽을 쌓아 성을 방어하였다.
  이 도시의 마지막 시대인 비잔틴 시대는 비잔틴 성곽안에 살려고 하는 사람들과 아야솔룩에 재정착하려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완만한 구릉지와 함께 한 강은 에베소를 항구로 도시로 발전케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레코-로만 시대에 무역을 관장했던 항구들 중에는 파놀무스(Panormus)와 신성한 항구가 있었다(스트라보). 카이스터 강으로부터 내려오는 충적토(allunivium)는 주전 2세기 후반, 로마가 아시아를 차지하기까지 항해의 방해요소가 되었다.
문학작품과 비문들은 바울이 사역할 동안과 그 이후 얼마까지 항구가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적어도 5세기까지). 에베소의 천연적 조건들- 카이스터강, 바다, 피온산(Pion = 뷸뷸다그) 그리고 개천등-은 그들의 신화와 에베소 주화에 잘 묘사되었다.

주후 1세기에 에베소는 기독교인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가 된다. 사도바울이 2, 3차 전도여행 때 이곳을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다. 또한 사도요한과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었다.
64년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자 사도 요한은 그를 대신하여 에베소의 지도자가 되었고 버가모, 서머나 등지에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요한계시록을 썼다. 로마황제 도미티안이 암살되자 요한도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썼다. 요한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에베소에 묻혔으며 비잔틴 시대에 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사도 요한 교회’가 세워졌다.

▯ 에베소1: 뷸뷸다그와 파나일다그사이 계곡
상부와 하부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사도 바울의 주요 사역은 이 지역과 관련이 있다.

*묵상(에베소1)
중요한 두 장소를 생각합니다. 3년 중 2년 반을 매일 같이 강론하던 두란노 서원. 그리고 은장색들의 소동에 죽을뻔했던 연극장을 봅니다. 아데미신의 강한 기운 때문에 2차전도여행을 그리스쪽으로 돌리고 그들이 훈련된 뒤에 이곳을 뒤집어 버린 그들의 영성이 에베소를 뒤집었습니다. 두란노서원의 오침 시간에 계속된 강론은 그들의 희생 위에 세운 열심의 열매로 스스로 회개하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바울의 서신 중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에베소에서 썼거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에베소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근심이 그를 눌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다녀오기까지 하였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디도를 보내고 고린도 후서를 썼습니다. 한쪽의 부흥과 한쪽의 근심은 그를 항상 누르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그럼에도 세상의 문화로 가득 찬 이 황무한 세상에 훈련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디모데 같은 이들을 통하여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하였고 교회에 대한 분명한 세계관을 천명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제자 디모데가 사역하다 몽둥이로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그후 이를 본 폴리갑은 옆동네 서머나에서 순교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부흥의 씨앗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성령운동이 강력하게 시작했던 이곳처럼 이 땅의 황무함 보시는 주여 이곳에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소서.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에베소2 
밀레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수집거부